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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연간 회고] 용두용미가 될 수 있게

by 준팍(junpak) 2023. 12. 30.

우테코 크루 모두가 그렇겠지만, 2023년은 내 인생에 큰 전환점으로 기억될 것이다.
모든 순간이 만족스러웠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순간을 후회하며 2023년을 용두사미로 기억하기엔 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이 회고는, 한 해동안 나를 한명의 개발자로 길러주신 모든 것들에 대한 감사이다.

Lv. 1 그때보다 순수한 걸 이젠 못 내놓네

레벨 1은 자바라는 언어가 아직 낯설게만 느껴졌던 시기였다. 이 땐 “남들보다 더 잘해야해”라는 마음보단 “자바와 객체지향을 진짜 멋있게 잘 쓰고 싶다(간지 주도 개발)”는 마음이 더 컸다. 기존 지식이 많지 않아 페어들의 좋은 습관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3개의 스터디를 통해서 다양한 크루들과 여러 주제에 대해 함께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확실히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선행학습에 대한 키워드가 전혀 없었기에 오롯이 해당 미션에서 배워야 할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가장 부담없고 즐기면서 해당 레벨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Lv. 2 제발 그만 힘들어 해

레벨 2부터 남들과의 비교를 시작했다. 다른 크루들이 무엇을 공부하는지에 신경쓰고, 이미 스프링에 익숙한 크루들과 나와의 거리를 매일매일 의식하며 나 자신을 압박했다. 이렇게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을 때, 우테코 외적인 문제들도 스트레스를 주기 시작했고, 이 스트레스를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페어와 트러블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레벨 2에서도 난 적절하게 성장했다. 지금에서야 할 수 있는 얘기지만, 배워야할 시기에 배워야할 것을 적절하게 잘 배웠다. 남들의 학습속도에 집착하지 않았다면, 레벨 2도 정말 즐겁게 성장할 수 있었던 시기로 기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불필요한 욕심이 번아웃의 여지를 남기고 말았던 점이 가장 아쉽다.

Lv. 3 우리는 빨리빨리의 민족 아닙니까?

레벨 3는 정말 누가 뭐래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 어떤 크루보다 열심히 했다. 빠르게 기획을 정리하고, 의견을 조율하고, 정책을 정의하고, 편하게 일할 수 있게 초기 세팅하고, 아이디어도 적극적으로 내고, 내 아이디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화면도 기획했으며 , 내가 가진 모든 자원 (기획자 경험이나, 장비, 필요하다면 장교경험까지도…!)을 활용해서 효율적으로 정말 멋있고 완성도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고자 했다.

너무 절실하다보면 보고싶은 것만 보게된다. 효율성에 집착하다보니 내가 듣기에 딴길로 새는 것 같은 아이디어면 말을 끊어버리기도 했고, 나의 목표가 당연히 우리 모두의 목표라고 생각해 팀원들과 라포 형성 과정 자체를 생략하기도 했다. 레벨 3에서, 가장 중요하게 해야했던 것을 효율성이라는 이름하에 비용 절감해버린 것이 가장 후회된다.

Lv.4&5 인간관계도 TDD가 되나요?

Fast Fail 이란 개념은 여러 방면에서 유용하게 사용된다. PO라면 해당 product로 해결하고 싶은 문제에 대한 가설을 검증할 때 사용할 수 있을 것이고, 개발자라면 테스트하기 좋은 코드를 작성할 때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토스 이승건 대표의 해당 영상을 보고 난 후 몇 년간 이 개념에 참 심취해있었다. 정적 팩토리 메서드를 처음 배우면 모든 생성자를 정적 팩토리 메서드로 대체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내가 아는 모든 분야에 적용해 보고 싶었다.

인간관계는 TDD가 되지 않는다. 이게 내 결론이다. “이정도 수위로 얘기했을 때 화내지 않았으니까 조금 더 세게 얘기해도 되겠지”, “내가 지금까지 한게 얼마인데 이 정도는 해도 되겠지” 등등… 참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사긴 참 어렵다. 내가 상처준 사람의 마음을 다시 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상처란 것은 쌓이기 마련이고, 역치를 넘어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허브와 대화하기 전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단게 부끄럽기도 하다.

마음이 떠난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은 결국 서로에게 또 상처를 안겨주는 일이 되기도 한다. 몇 달을 밤잠 안 자면서 나 자신을 갈아넣던 프로젝트가 언급하기도 싫어지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내가 놓쳐버린 것과 놓아버린 것에 대해 생각하다가,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동굴 속에 몇 주간 숨어지낸 후에야 깨달았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이 일을 오랫동안 함께 즐겁게 하고 싶다면, 같이 하는 사람의 마음을 사야 한다. 충분히 대화하고,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오지도 않은 미래를 설계하며 이대로 되지 않는다고 화내는 것보다 더 멋지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 사실을 2023년이 끝나기 전에 알게 되어, 올 한 해를 용두용미로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

우테코 수료 후, 프리코스 6기 지원자 총 20분께 코드 리뷰를 해드렸다.

거창한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건 아니고,

  1. 작년에 내가 기존 기수들에게 코드 리뷰를 받고 싶었다.
  2. 내가 개발 관련으로 사람들에게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이 두 가지 생각만으로 가볍게 시작한 일이었다.

리뷰를 남겨도 피드백이 없거나, PR을 비공개로 전환하여 나도 확인할 수 없게 되는 일이 생겨 허탈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러다가도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어하고 더 좋은 코드를 작성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새벽 4시까지 고민하는 분들을 보며 강력한 동기부여를 받기도 한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남을 돕겠다고 한 일이 나를 돕는 일이 되었다는 것이.

내년엔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게 성장하고 싶다는 다짐을 했다.

그래도 혹은 그래서. 행복했다.

2023년의 우리들

이 키링은 크루들과 함께한 순간을 간직하고 싶을 때마다 제작했던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제작해서 모두에게 나눠주다 보니 지출이 생각보다 컸다.

그래도 이렇게 키링을 지켜보고 있으면,
이 키 제작할 때의 감정-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지금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이
떠올라서 하기 잘했다고 생각이 든다.

용두로 시작한 일이 사미로 끝나지 않게 하는 힘은 결국,
처음 이 마음을 끝까지 잊지 않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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